메뉴

웅덩이/ 박노빈

박노빈(1960~)

경기도 용인 출생
인천교대 졸업, 경기대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졸업
2002년 <문예사조>로 등단
시집 ‘하얀 축복 속을 달리다’
현재 수원문인협회 회장



저어기 마음 속
웅덩일 파서
잔잔한 물결마저 잠재우고
투명과 고요를 하나 가득 담아 본다

으스름 꿰뚫고서
나의 푯돌이
우련히, 쓰윽하니
나타나 올 것만 같아

시 읽기/ 윤형돈

가운데가 움푹 패여 물이 괴어있는 곳, 유년시절, 시골 논 한 가운데 ‘웅덩이’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음습한 수초 사이로 개구리밥이나 장구벌레 혹은 물방개나 새끼붕어가 가뭄 날 빼고 하릴없이 둥둥 떠다녔다. 평평한 논이나 늪, 연못 보다는 대개 지대가 낮고 깊게 패였으니 물속의 내용물이 몹시 궁금하긴 했다. 그러나 시인의 웅덩이는 ‘저어기 마음속 웅덩일 파서’와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웅덩이’다. 따라서 더 심도 있고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심연으로 표상된다. 빠져 나오기 어려운 곤욕이나 블랙홀의 상황일 수도 있으며 더 깊어지면 혼란, 나락, 혼돈, 지옥으로 떨어질 만큼 짧은 시 행간에 웅숭깊은 마음의 복잡다단한 정서가 짙게 깔려있다. 내면의 깊은 속을 알 수 없으니 답답하고 의뭉스럽기 까지 하다. 시인의 소망처럼 투명과 고요와는 당장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불투명하고 소란한 웅덩이에 ‘투명과 고요를’ 채우고 싶어 한다. 이 시의 키워드는 단연 둘째연의 ‘푯돌’이다 침침하고 흐릿한 ‘으스름 꿰뚫고서’ 보일 듯 말 듯 ‘우련히’ 그것도 잔뜩 웅크리고 있다가 ‘쓰윽하니’ 자신의 영역이나 구획을 경계석(境界石)으로 표시하는 것 말이다.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는 표지석(標識石)으로 아니, 구체적인 ‘푯돌’로 등장하길 고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문득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함도 아니다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노라’ 당당하게 자신의 목표의식을 고백한 사도 바울의 이유 있는 외침을 듣는다. 다만, 자기 안에 깊숙이 도사린 ‘웅덩이’가 어느 날 무슨 ‘푯돌’로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느냐가 문제다. 그러나 웅덩이는 좀처럼 마르는 법이 없어야 한다. 웅덩이가 쉽사리 제 바닥을 드러내면 그것은 이미 웅덩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오직 자신의 ‘마음속 웅덩이’에서 ‘나의 푯돌’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간절함으로 귀결된다. 자신과의 싸움을 오랜 기다림과 참음으로 치르는 선한 의지의 표출이다. 그러므로 먹과 붓으로 난초를 그리고 싶어 하고, 비상을 위한 모든 상처들의 저돌성을 ‘하얀 축복’으로 내달리기를 희망하는, 시인의 여린 듯 강인한 감수성이 내재하고 있는 한, 그에게 건너지 못할 ‘웅덩이’는 없다. .


포토

더보기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