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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꼭지/ 정진규

정진규(1939~2017)

산문시의 새 영역을 개척한 정진규 시인은 안성농고,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나팔 서정‘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와 일상의 괴리를 인식하고 내놓은 시론, '시의 애매함에 대하여'와 '시의 정직함에 대하여'(1969)에서 자신의 지향을 분명히 밝히며. 세 번째 시집 '들판의 비인 집이로다'에서 산문시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관념에서 벗어나 일상성을 회복하려 했다. 1990년대에 '몸詩'(1994)와 '알詩'(1997) 등의 시집을 통해 신체와 생명의 ’율려律呂‘를 탐구했고, 최근까지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였다.


  ▲ 사진은 영화 '변호인'에서 열연했던 배우 김영애씨의 모습

엄마아, 부르고 나니 다른 말은 다 잊었다 소리는 물론 글씨
도 쓸 수가 없다 엄마아, 가장 둥근 절대여, 엄마아만 남았다
내 엉덩이 파아란 몽고반으로 남았다 에밀레여, 제 슬픔 스스
로 꼭지 물려 달래고 있는 범종의 유두乳頭로 남았다 소리의
유두가 보였다 배가 고팠다 엄마아

시 읽기/ 윤형돈

정진규 시인이 평소 추구해 마지않았던 ‘몸詩’의 일환이다.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몸’에 대한 사유思惟의 산문시 쓰기에 평생 골몰하셨던 분이 여기서 노래한 신체 부위는 여성의 상징인 유방, 즉 가운데 돌기한 ‘유두’라는 신비의 ‘젖꼭지’이다. ‘나의 누이와 나의 신부’를 예찬한 ‘아가서’에는 “네 두 유방은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는 쌍태 노루 새끼 같구나.”라며 율려律呂의 가락을 빚어내는 균형적 질서로서의 몸詩를 성서적 은유로 표현한다.

미상불, ‘엄마아,‘ 부르는 첫 의성어에서 이미 어린 날의 모성본능은 마구 깨어난다. 학교라도 갔다 오면 의례 ’엄마아!’ 부르고 보는 그 옛날 유년의 무조건적인 母音이다. 그 맹목적인 부름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는 데, 더 이상 무슨 말과 글이 필요하랴! 모든 단어와 사물 위에 ’가장 둥근 절대‘만 남는다고 했으니, 나의 삼촌에게는 ’고달픈 하루가 저물어 둥근 달‘로 뜨신 어머니요, 천하의 불효자인 나에겐 일용할 양식을 위해 허리 굽은 유모차 밀고 이동하시던 어머니다. 간간히 배달되는 택배상자에 삐뚤빼뚤 어미 글씨가 못내 뭉클하였다. ’엉덩이 파아란 몽고반‘ 대신 내 오른쪽 귀밑에는 난리 통에 잃어버리지 말라는 표식의 흉터 하나가 원죄처럼 달라붙어 있어 그 분의 모진 고생을 증거 한다.

너무 가난해서 시주로 아이를 바친 봉덕사의 어머니, 종鍾이 된 아이는 얼마나 엄마 품이 그립고 에미 젖을 빨고 싶으면 죽어서도 ’에밀레!‘ 울었을까. 젖을 물려본 어미는 안다 가슴 뭉클한 그 북받침을. 찌르르 젖이 돌 때, 눈물도 핑 도는 것을 허기진 마음으로 안다, 밀린 숙제처럼 다 못 먹은 엄마 젖은 애정 결핍이며, 퉁퉁 불어버린 모성의 젖가슴이다. 어미의 ’젖꼭지’가 보일 때, 아이는 더 배고파 ’엄마아,‘ 배가 부를 때까지 외친다. 모성이 없는 황폐한 세계일수록 ’엄마아,‘ 부르는 소리는 ’범종의 유두乳頭’처럼 영원한 존재의 울림으로 거듭난다.

이쯤에서 왜 하필, 정채봉님의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이란 시가 문득 뇌리에 사무쳐 여기에 인용해 본다.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단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 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고 숨겨 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갓난아기에게, 소년에게, 중년이 되고 노년에 이르는 남자에게도 어머니는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다. ‘엄마아’ 부르는 소리야말로 텅 빈 충만이요, 극서정시의 원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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