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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와 개미지옥

아침에 출근해 앉아, 보니 어제 물을 반만 마시다 만 유리컵에 벌레가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화분 키우는 취미가 있어 조그마한 사무실에 여러 개의 화분이 있는데 왜 하필 물컵일까?

 

풀 나무 냄새나 꽃 향보다 더 좋은 냄새가 벌레를 물컵으로 이끌었는지 모르겠다. 내 입술에 묻어 있던 설탕의 잔향이 물컵에 묻어서 벌레를 유혹했는지?, 아니면 물 향이 자연스럽게 벌레를 유혹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생각해 보면 거의 아침마다 물컵에 빠져 있는 벌레를 본 듯하다.

 

 

풀에 묻어 있는 물이라면 아마 벌레는 풀을 밟고 기어나와 날개를 말리고 다시 날아갔겠지만, 물컵에서는 그럴 수 없었나!. 유리 재질을 가지고 만들어진 컵의 미끄러짐은 벌레가 가지고 있는 발의 마찰력으로는 도저히 오르기 힘들었을까? 아마도 컵은 달콤한 물을 가지고 있지만 한 번 빠지면 도저히 오르기 힘든 일종의 개미지옥 같은 환경을 만드나 보다.

 

유리 재질의 물컵이 아니더라도 일부러 벌레는 잡는 도구는 많다. 벌레에게 뿌리면 신경을 마비시켜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바퀴벌레 잡는 약이나 모기약은 벌레에게 치명적이다. 다리를 못 움직이게 해서 배를 뒤집어 까고 누워버린 바퀴벌레, 그리고 날개를 움직이지 못해 떨어지는 모기와 파리도 나름 살아보겠다고 애쓰다가 죽는다.

 

마비되는지도 모르고 훈연 속을 날다가 떨어지는 날벌레와 반짝이는 것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불빛을 보고 날아가다가 감전사하는 벌레부터, 탄소 냄새에 이끌려 따라갔다가 영영 갇혀버리는 벌레에 이르기까지, 허무하게 죽을 이유는 없는데, 단지 사람이 편리하게 살겠다고 죽어 나간 벌레들의 떼죽음에는 애도나 부조도 없다. 다만 죽음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더 확실하고 빠르게 죽었느냐는 성능의 차이만 있다.

 

생각해 보면 병 속에 벌레를 가둔 것은 어려서부터다. 개미들을 모아서 병 속에 집어넣고, 폭음탄을 병 속에서 터뜨려 개미들을 집단 살해하며 폭약의 위력을 실험해보던 인간의 본성은 벌레들에게는 분명 치명적 환경이다.

 

어느 때는 땅강아지를 잡아다 병 속에서 키워보겠다며 멀쩡한 벌레 하나를 천당으로 보낸 일도 부지기수다. 사슴벌레를 잡아 플라스틱 용기에 가두어 두었다가 싸움을 시켜보질 않나, 장수하늘소를 잡아다가 키워보겠다는 만용을 부리기도 했다. 결국 수많은 벌레가 사람의 즐거움과 편리함을 위해 그 한 몸 바쳐가며 지구의 일원으로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사람에게 미움 벌레와 달리 어느 이쁨을 받는 벌레는 꽃가루를 뭉쳐서 꿀을 만들어 제공한다. 그래서 사람에게 여러 가지의 애칭으로 불리며 이쁨을 받지만, 따지고 보면 개미를 포함해 대개의 날벌레는 꽃가루를 다리에 묻히고 다니면서 꽃의 수분을 돕는다. 벌레를 그렇게까지 증오할 이유는 없다.

 

오늘 저녁에는 빈 컵에 물을 남기지 말고 퇴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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