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단위로 시간을 구분하는 것을 영어로 Century, 우리말로는 ‘세기’라고 한다. 그리고 1000년 단위로는 밀레니엄(millennium)이라고 한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3번째 밀레니엄시대의 초반이다. 첫 번째 밀레니엄 시대가 발견과 정복의 시대이었다면 두 번째 밀레니엄시대는 광기와 지배의 시대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밀레니엄 시대에 만들어진 국경선과 민주주의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토양이 됐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소유하고 있거나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적 가치는 여러 곳에서 손상을 입고 있다. 특히 민주주의적 질서 안에 있는 불평등은 민주주의를 훼손시키는 주범이기도 하다. 서구사회로부터 시작한 민주주의는 지금 여러 나라에서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오르고, 민주주의가 만능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붕괴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촉발된 혼란 속에서 약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민주주의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바이러스가 민주주의 질서 속에서 가장 나약한 사람들을 보다 강력하게 공격하는 것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어떤 국가이던 자본가들로만 구성된 국가를 만들 수는 없다. 국가를 이루려면 반드시 노동자가 필요하고 행
코로나 19가 휩쓸고 간 전 지구촌은 이탈리아의 로마, 스페인의 순례자 길, 프랑스의 자랑 파리 그리고 휴양지로 이름 높았던 동남아시아의 미래를 송두리째 망가뜨리고 있다. 이들 모두는 세계적 관광지이다. 코로나 19로 인한 불확실성은 여행자체를 두렵게 만들고 있으며 이들 나라에 대한 몰락을 예고하고 있다.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제조업 비중보다 관광산업 비중이 높은 나라들은 코로나 19 이후의 세상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의 제조업 비중은 관광산업보다 훨씬 우위에 있기 때문에 영향을 덜 받는 다고는 하지만 그물망처럼 얽혀 있는 오늘날 관광대국 몰락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광범위한 코로나 19에 대한 검사를 하지 못해서 상시 재발이 우려되는 일본 여행을 할 것인가에 대한 우려, 꼭 필요한 경제활동이 아니라면 현재 일본을 자진해서 여행할 사람은 거의 없다. 한 마디로 일본의 관광산업은 문을 닫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수만의 확진자가 발행했던 이탈리아가 언제 다시 관광사업을 재개할지 시점조차 알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코로나 19에 대한 우려는 범세계적인 불확실성을 가지고 왔다. 이로 인해 펜더믹 초반에는 인
북한의 위협이 선거에 도움이 된다는 한국의 극우보수는 여전히 북한에 대한 적개심과 진보에 대한 이념공세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국민들은 세계를 향해 무한질주를 하고 있는 와중에도 극우세력은 현 정권이 “대한민국을 김정은에게 가져다 받칠 것”이라는 주장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동조했던 보수 세력은 지난 선거에서 몰락수준의 참패를 당했다.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그들이 싫어하는 공산국가인 중국과 베트남은 우리나라의 무역교역량 순위에서 1위와 6위에 올라서 있다. 다만 북한만이 교역국가에서 빠져 있을 뿐이다. 다자주의를 주장하고 있는 한국에서 북한이라는 상대는 중국이나 베트남보다 조건이 좋은 교역 대상이다. 사용하는 언어가 같고 우리와 비슷한 기질이 있으며 인건비가 베트남보다 저렴하다. 특히 지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에 좋은 투자 대상이다. 베트남의 지난 10년을 보면 한국의 집중적인 투자가 있었고 경제성장이라는 성과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 베트남은 한국의 6번째 교역국가이다. 한국과 베트남 중 누가 더 이익을 얻었는지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윈-윈’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우리는 베트남보다 더 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가지고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가 휘청 이고 있는 현실에서 한국이 선방했다는 기사는 확실히 한국인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었다. 지난 한 달간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국의 방역기술과 노하우를 알려달라는 각국 정상들의 전화가 쇄도 하고, 한국산 진단기트를 지원해 달라는 요청이 전 세계 100여 나라들에서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특히 서구 언론들은 한국을 선진국이라고 표현하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유럽의 한 방송에서는 “선진 10개국 중 한국이”라는 표현을 하며 한국이 이미 선진국 그룹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표현을 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선거 전략에 작심하고 이용이라도 하려는 듯 “문재인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공개 브리핑까지 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지난 3년간 한국은 정말 세계 속의 한국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간이었다. 그 절정이 지금 한국의 위상이다. 지난 2018년 방탄소년단은 전 세계로부터 구성된 1억명 이상의 ‘아미’라는 팬들을 설레게 했다. 그리고 2019년에는 봉준호 라는 영화감독이 영화 한편으로 미국을 강타했으며 올해는 전염병 코로나-19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교과서처럼
선거철이 다가오면서 각종 구호가 난무하고, 주장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 와중에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돌면서 민심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설상가상 우리나라 정치를 주도하고 있는 일부 정당들은 중국인에 대한 입국금지를 주장하고 나서고 있으며 대통령이 입국금지를 하지 않았다고 정치적 책임을 지라는 말까지 하고 있다.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말하기 나름이지만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만일 “미국에서 심각한 독감이 유행하면 미국인 출입금지를 현직 대통령이 결정할 수 있을까?”라고 묻고 싶다. ‘코로나-19’는 전염성이 높지만 치사율은 계절플루(독감)보다는 덜하다. 전염이 무섭기 하지만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질병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고 중국인 출입금지를 주장하는 것은 국제적 교류와 감각을 상실한 정치인이나 할 소리다.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은 무역을 기반으로 한다. 한국의 전체 무역량을 따져보면 중국은 일본과 미국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교역을 하고 있는 나라다. 이런 관계는 앞으로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한국의 원화는 달러에 연동되지 않고 중국 위완화에 연동되고 있다는 점도 생각해 봐야 한다. 보다
최근 경기도(이재명 도지사)는 오산 독산성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경기문화재단, 오산시(곽상욱 시장)와 지난해 9월 오산 독산성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실무협의회를 통해 올해 추진사업을 논의해 왔다고 한다. 기고/오산시민 이경호 오는 7월 세계유산 등록 추진과 관련한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독산성의 다양한 연구를 주제로 ‘독산성 학술심포지엄’ 을 개최하고 12월 연구 자료집을 발간할 예정이다. 세계 문화유산 등재를 위해서는 통상 10여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과연, 독산성은 객관적으로 비춰지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는 것인가? 그저, 권력자들의 치적놀이에 불과한 선거팔이용 대 시민 기만성 프로파간다. 는 아닌가? 시민들은 연말·연초 이거나 선거철 직전에 매번 겪는 정치인들의 대 시민 치적 홍보물로 기겁할 일도 많이 생긴다. 언제나처럼 어김없이 선거를 앞둔 이번 겨울에도 마을버스 좌석조차 “향기 없는 전단지”는 여지 불문 시민의 눈을 피해가지 못했다. 물향기 편지는 지역 국회의원의 정치홍보지 제호다. 정치인의 홍보 목적을 높일 수도 있겠으나, 진실하지 못해 보이는 대 시민 기만성 정책홍보에 놀라움을 금 할 수 없는 느낌도 없
시장을 자주가보는 사람은 아니지만 꾸준하게 물간의 가격을 체크하는 것은 나도 모르게 몸이 익혀온 습관이다. 정치인 이전에 기자로서 물가의 동향을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이 기본적인 자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사업가나 정치인 모두를 홀리는 듯한 뉴스가 나오고 있다. 바로 디플레이션 문제다.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인플레이션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들 봤다. 물가가 오른다는 말이다. 급격한 성장을 했던 한국은 성장과 더불어 돈의 흐름이 빨라지면서 잦은 인플레이션을 겪어왔다. 자고나면 오르는 부동산가격과 자고나면 또 오르는 기름 값 덕분에 한국인에게 인플레이션은 일종의 성장통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경제성장이 둔화되면서 정부는 물가가 오르지 않고 오히려 물가가 떨어지는 디플레이션 우려가 있다는 발표를 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물가가 떨어졌을까? 각종 통계지표상으로는 물가가 떨어졌다고 하는데 실제적으로는 물가가 떨어졌다고 체감하기는 어렵다. 가까운 재래시장에만 들러 봐도 물가가 떨어졌다는 사람보다는 올랐다는 사람이 많은데 정부만 떨어졌다고 한다. 좀 더 깊숙하게 들여다보면 물가가 떨어졌다고 주장하는 정부의 목소리에는 소득주도성장이 실패했다고 하는
한반도에서의 외국군 주둔의 기원은 기원전까지 올라간다. 최초 한반도에서 외국군이 주둔한 것은 한나라의 군대다. 조선과 한나라 간의 전쟁에 승리한 한나라는 압록강 일대에 한사군을 설치하고 군대를 주둔시켰다. 후에 이들을 몰아내고 나라를 건국한 것이 고구려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당나라군이 한반도에 군대를 주둔시켰으나 통일신라에 의해 물러났으며 고려시대에도 원나라 군대가 주둔했었다. 조선에 이르면 좀 더 굴요적인 상황을 맞게 된다. 일본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명나라 군이 오랜 시간 동안 한반도에 주둔했었다. 그리고 근대에 들어오면 일본군이 들어와 동학농민군을 학살하고 조선의 정치를 휘어잡았다. 그리고 해방 전까지 일본의 군대는 조선에서 장기간 머물렀다.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현대에 들어서면서 한반도에서는 6`25라는 커다란 전쟁이 발발했다. 그리고 미군은 한반도에 들어와 지금까지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미군의 주둔지는 서울에서 현재 평택으로 이전 중에 있다. 미군의 주둔 목적은 북한의 남침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목적도 점차 바뀌고 있다. 미군의 주둔 목적이 차츰 바뀌고 있는 이유는 한국의 국력성장에 따라 한국의 자체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면 공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에 동의할 국민은 없다. 그래서 국민들은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뛰어나가 각자의 주장을 펼치면서 공통적으로는 다시 한 번 공정을 요구했다. 조국 사태에 따른 광장정치는 우리사회가 여`야를 떠나 불공정하기 때문에 공정을 외친 것이다. 당을 떠나 옳은 쪽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 국민들이다. 최순실 사태에서 우리 국민은 당연하게도 옳은 쪽을 선택했고, 선택받은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가 지키지 못했던 ‘공정’을 약속했다. 그런데 조국장관 일가는 우리사회가 요구한 공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조국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라고만 외친다. 결과는 국민 파열음뿐이다. <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문재인 정부는 우리사회가 지난 수십 년간 요구해온 ‘공정사회’에 대한 요구를 조국 하나를 지키려다 파열음을 만들어 낸 것이다. 국민들은 이에 대한 사과를 받고 싶어 한다. 아직 박근혜-최순실로 이어지는 국정농단에 대한 치유와 상처가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또 다시 ‘공정사회를 비틀어 버린 것에 대한 허탈과 좌절, 실망이 지금 현 한국 국민들의 마음이다. 시민운동이나 정치운동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사람들, 수험생을 둔 부모의 아주 어려운 소원 중에 하나는 아마도 자녀가 서울대학교에서 훌륭한 성적으로 인턴을 하고 그 성적을 바탕으로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일 수 있다. 자녀가 잘 되길 바라는 부모라면 그렇게 할 것이다.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고등학생이 서울대에서 인턴을 할 수 있는 학생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대학생도 아닌 고등학생이 인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영광 그 이상일 수 있다. 그런데 조국의 자녀는 서울대에서 인턴을 했고 인턴생활을 했다는 증명서까지 받았는지 아닌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다만 본인들은 인턴을 했고 증명서를 받았다고 한다. 반대로 서울대 학생들은 아니라고 하며 거리에서 가짜 인턴증명서를 발급해 주는 퍼포먼스까지 열고 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명 조국대전의 극히 일부분이다. 평범한 서민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그것에 대한 변명과 가십성 기사들이 서로를 물고 뜯고 있다. 이에 대해 국민들은 조국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람의 일상이 아닌 법무부 장관이라는 직위에 있는 사람의 도덕성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어떤 이들은 조국 장관의
젊은 청년들이 거리에 나와 구호를 외치는 광경은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보기 힘든 광경이 아니다. 젊어 진보가 아니라면 청년이 아니라는 말처럼 청년들의 이상과 꿈은 기성서대가 가진 것들을 아주 조금씩 변화시켜 먼 훗날에는 청년들의 꿈이 완성되어지기도 한다.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우리나라에서 젊은 청년들의 꿈이 가장 격렬했던 세대는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세대들 일 것이다. 이승만 독재를 기반으로 시작해서 군부독재가 가장 견고했던 시절, 무자비한 권력으로 국민을 통치하고 지배했던 세력들에 맞서 싸운 학생들의 꿈은 하나 된 조국과 자유대한민국이었다. 그리고 그 꿈은 수많은 희생위에 아주 서서히 이룩되었다. 우리는 그 꿈을 이룬 세대를 과거에는 386세대라고 했고, 어느 날에는 486이라했다. 그리고 최근에 그들은 586세대가 됐다. 50대이면서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60년대 생들, 이들은 현재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실질적인 기성세대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은 이 기성세대에게 종종 묻는다. “우리에게 기회의 평등이 있느냐?”고 묻는다. 누구의 아들은 국회의원의 아들이기 때문에 또는 누구의 자녀는 정부 고위직의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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