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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은 대한민국 비정규 국민인가?

한국형 카스트제도의 현실 학교의 계급화
지휘는 정규직이 책임은 비정규직이 지는 학교의 현실

대한민국에서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위치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언제, 어디서나 계약 해지가 가능한 대한민국 비정규 국민이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은 동일 시간에 동일 노동을 해도 임금은 정규직의 60%에 그친다.

 

그리고 상여금이나 성과급이 없는 정규직에 비해 턱없이 적은 것이 대한민국의 비정규직이다. 이런 문제를 대한민국에서 법으로 강제하고 있어서 비정규직은 대한민국 비정규 국민일 수밖에 없다는 자조적인 한숨이 나오지만 지난 20년간 법은 고쳐지지 않았다. 다만 계약 해지의 조건만 사라지고, 급여체계는 비정규직과 동일한 무기직이라는 신종 계급이 만들어졌을 뿐이다. 그리고 무기직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이 세계에 알리고 싶지 않은 숨겨놓은 중규직이라며 한숨에 한숨을 더하고 있다.

 

 

정규직과 무기직 그리고 비정규직의 혼란과 책임이 극에 달해있는, 대한민국의 가장 적나라한 숨겨놓은 치부가 알려지지 않고, 비상식이 상식을 이기는 현장을 꼽자면 학교라고 할 수 있다. 경기도의 학교 인적 구성원을 살펴보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무기직이 학교를 구성하고 있는 전부다.

 

우선 학교에서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교장, 교감을 필두로 하는 교원집단은 크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뉠 수 있다.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담당하고 있는 일은 학교의 운영에서부터 교수학습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중 정규직이 주로 담당하는 일은 직함이 있는 교장, 교감, 부장교사, 학생주임, 학년주임 등이다. 반면 비정규직 즉 기간제 교사가 담당하고 있는 일은 학생들을 가장 많이 대면하는 담임에서부터 교육과정 설계에 이르기까지이다.

 

담임선생이 하는 일은 엄청나다. 학생들 지도에서부터 성적관리 그리고 자신이 맡고 있는 교과수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통상 담임이 정규직을 맡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현실은 아니다. 대게의 정규직은 담임이 되는 것을 상당히 기피하고 있다.

 

담임이 된다는 것은 자신에게 배정된 반의 학생들에 대한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학교 인사위원회의 구성원인 정규직들은 무한책임이 동반되는 담임이라는 직함을 갖기 싫어한다. 이런 현상은 공립보다 사립에서 더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공립의 경우 정규직이 비정규직보다 많고, 인원 선발을 교육청이 책임지며, 교사 배치와 기간 등을 교육청에서 지휘하고 있어 비정규직의 담임 비율이 높지 않다.

 

반면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사립학교로 갈수록 비정규직 담임의 비율이 높다. 교원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사립학교 재단은 언제나 계약 해지가 가능한 비정규직을 선호한다. 사립학교에서 비정규직을 담임을 선호하는 또 다른 이유는 책임회피의 길이 열려 있어서이다.

 

지난 2017년, 경기 남부 오산의 한 중학교 교실에서 학교폭력이 발생한 일이 있었다. 과학 수업 시간에 교사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학교폭력이 발생했었다. 학생 두 명이 장애인 학생을 의자에 묶어 놓고 폭력을 행사했던 사건이었다. 취재 당시 학교 관계자는 “학생들의 장난이었다”고 하는 변명이 있었지만 결국 학교폭력으로 교육청에 신고가 된 사건이다.

 

이 사건의 결과는 수업 중에 자리를 잠깐 자리를 비웠던 정규직 과학교사는 살아남았고, 해당 학생들의 담임을 맡고 있던 비정규직 교사가 책임을 지고 계약을 해지당했다. 그럼에도 비정규직 교사의 항의는 없었다. 왜냐하면 비정규직 교사가 이런 일로 항의하면 앞으로 경기도 관내에서는 문제 선생이라는 낙인이 찍혀 다시는 학교에서 직장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은 지금도 관행처럼 이어지고 있다.

 

학교 현장에서 비정규직을 채용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교원결원에 의한 것이다. 임신, 육아는 물론 병가까지 다양한 사유들로 인해 결원이 생기면 결원 기간 동안 비정규직 교사가 임시로 일하게 된다. 어쩌면 진정한 의미의 비정규 교사는 결원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또 다른 비정규직 교사의 채용이유는 정규직이 하지 못하는 교과 수업을 해야 할 일이 갈수록 많아지는 현실 때문이다. 교사가 된 지 10년이 지난 사람들이 많은 학교일수록 비정규직 교사의 활용도는 높다.

 

다른 나라와 달리 대한민국은 사회발전 및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가 엄청나게 빠른 편이다. 불과 1~2년 사이에 새로운 기술과 문화가 보급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여기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바뀌는 입시제도와 디지털 문화는 나이 든 사람일수록 적응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학교라고 다르지 않다. 나이가 있는 교사일수록 학생들과의 소통이 어렵다. 때문에, 현재의 사회생활에 적응이 잘된 교원들을 뽑는다. 문제는 교원 총량제 때문에 정규직은 뽑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선발된 비정규직 교사들은 사실상 정규직이 가르칠 수 없는 분야들을 주로 가르친다. 코딩에서부터 현대음악과 미술 그리고 체육 등에 비정규직 선생들이 폭넓게 분포하고 있으나 이들에게 붙는 이름표는 기간제라는 딱지다. 정규직이 할 수 없는, 상시로 필요한 일자리임에도 기간제라는 이름으로 언제나 계약 해지가 가능한 위치에서 일하고, 정규직의 60%에 해당하는 급여를 받아 가는 것이 대한민국 기간제 교사들이다.

 

현장 교원의 정년을 45세 이하로 줄이고, 현실에 맞는 정규직 선생들이 일선 담임에서부터 현장 책임까지 지는 것을 법적으로 보완하기 전까지 비정규직 교사의 도움 없이는 학교 자체가 굴러가지 않음에도 정부와 교육청 그리고 거의 모든 사회가 비정규직의 급여차별과 인사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오죽하면 비정규직은 대한민국의 비정규 국민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또한 정규직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학교에 몸담고 있는 어느 정규직 교원은 지나가는 말이지만 비정규직에 대한 인식에 대해 뼈있는 말들을 한다. “비정규직이나 무기직은 승진도 없고 자리 이동도 거의 없다. 학교에서 사고 날 때 정규직이 책임지면 그 사람은 앞으로 인사에 엄청난 불이익을 받게 되지만 어차피 승진이나 인사이동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들이 책임지면 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는 인식은 오늘날 학교가 처한 계급구조를 가장 적나라하게 말해준다.

 

학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보건과 영양 및 사서 분야도 비정규직의 세상이다. 먼저 보건을 보면 과거 양호 선생님이라고 불리던 교사들이 보건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보건교사는 보건실과 학생들의 보건을 담당하고, 일부는 학생들과의 상담도 담당하고 있다. 지난 2010년 이후 학교 사고가 빈번했던 지자체에서는 교육청 예산이 아닌 지자체의 지원으로 상담교사들을 파견하기도 했으나 그 이전까지 학생들과의 성적인 문제나 다툼에 있어 보건교사의 역할이 컸었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신체적 문제를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은 보건교사다. 학생들이 일부러 숨기기 전까지 자잘한 상처에서부터 체벌의 흔적까지 보건실에는 남아 있다.

 

보건교사들의 말에 따르면 보건실에 학생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시기는 시험 기간이라고 한다. 시험 스트레스로 인해 두통과 복통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한꺼번에 몰리면 감당이 어려울 지경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와중에 발견되는 이상 징후를 보이는 학생들에 대한 보고는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현실이다.

 

보건교사에 대한 지휘 감독은 통상 교무실에서 하지만 실제 보건교사들이 일하는 현장은 행정실에 가깝다. 말이 교사지 학생들에게 일반 보건 현황과 대처 방법 등을 학습시켜야 할 수업 시간에 보건교사는 학교 허드렛일을 하곤 한다. 그것도 보건의 업무라며 강제하는 것이 일부 사립학교의 현실이다. 정규직 보건교사의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 사립학교로 가기 싫어하는 이유다. 경기도교육청의 보건교사 모집은 수시로 있다.

 

학교 현실에서 가장 고통받는 직종 중 하나는 영양사다. 지난 2010년 이후 도입된 무상급식은 보편적 교육의 일환으로 도입됐다. 취지가 좋았기 때문에 지난 10년이 넘도록 무상급식은 일부 고등학교 과정까지 확대됐다. 그러나 무상급식의 이면에는 단, 시간 내에 수백 명에 달하는 학생들의 점심을 해결해야만 하는 벅찬 노동이 숨어있다.

 

일반적인 우리나라의 군대 체계를 보면 4개의 소대가 모여 중대를 이루고 4개의 중대가 대대 단위를 꾸린다. 통상 대대 병력이라 함은 부대마다 다르지만 약 600~800명 정도 된다. 물론 더 많을 수도 있다. 이 대대병력을 먹여 살리기 위한 취사병의 인적 구성은 통상 24명이다. 이것을 학교 단위로 가져가면 600명 정도의 학교에는 최소한 24명 이상의 근무 인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학교의 현실은 가혹하다.

 

총액 임금제에 묶여 있는 학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마구 섞여 있는 상태에서 학생들의 급식 준비를 한다. 다만 급여와 성과급의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질 뿐이다. 최근 학교 급식실 관계자들은 근로환경을 바꾸어 달라는 요구와 시위를 하고 있다.

 

 

비정규직 급식실 관계자는 성과급도 없는 현장에서 매일 젊은이들도 소화하기 힘든 육체노동을 하면서 우리나라 최대의 민주화 성과 중 하나라는 무상급식 제도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끝없는 차별, 차별, 차별이다. 오죽하면 지난 몇 년간 이들의 시위 구호가 차별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 이다.

 

계약 해지의 공포에서 벗어났다는 무기직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하다. 일방적인 계약 해지로 인해 언제든지 실업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공포에서는 벗어났지만, 이들의 급여는 여전히 대한민국 최저임금 수준이다. 근무를 10년을 하던, 20년을 하던 최저임금 수준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정규직들이 분기마다 받아 가는 성과급은 그림의 떡이다.

 

어느 사립학교의 교장은 성과급을 받던 날 너무 미안한 나머지 자기의 급여를 쪼개서 무기직에게 나눠 줬다는 전설적인 후문이 나돌 정도다. 계약해지 제외하면 비정규직과 무기직은 거의 한 몸이다.

 

대한민국 학교는 다음 세대를 책임질 사람들에게 지식과 도덕을 가르치지만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이 몸소 눈으로 배우는 것은 계급이다. 동일 노동과 동일 시간을 일해도 결코 평등하지 않은 급여와 책임을 눈으로 보고 경험하게 된다.

 

또한 학생들을 통해 부모도 알게 된다. 그래서 결코 비정규직으로 살면 대한민국의 비정규 국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학생들을 학원으로, 학원으로 몰아붙이게 된다.

 

대한민국 학교생활에서 도덕은 그림의 떡이 아니고 가장 더러운 대한민국이 숨기고 싶어 하는 처절한 계급사회의 표본이며 비정규직은 표본실의 청개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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