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티잔 혹은 빨치산이 등장하는 노래 중에 ‘벨라 차오(Bella Ciao)라는 노래가 있다. 알려지기로는 이탈리아 북부의 민요라고 한다. 오늘날 이 노래는 전 세계 저항정신을 상징하는 노래로 자리 잡고 있으며, 세계 여러 나라의 버전이 있다. 당연하게도 우리나라 버전도 있다. ’벨라 차오‘라는 노래가 저항의 상징으로 불리기 시작한 시기는 세계 2차대전 당시다. 이탈리아 북부에서 지난 20세기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와 독일 나치 군대를 상대로 게릴라 전술을 펼쳤던 비정규군을 마치 연인처럼 묘사한 노래가 ’벨라 차오‘다. <전경만의 색깔있는 이야기>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 당시, 광화문에서 불렸던 여러 노래 중 하나다. 최근에는 모 광고의 배경음악으로도 사용된 적이 있다. 영화 ’종이의 집‘ 내용 중에 등장하기도 할 만큼 유명세를 타고 있다. 노래의 내용은 별것 없다. 굳이 내용을 요약하자면 애인에게 작별을 고하고 죽음을 각오하고 떠나는 파르티잔 용사의 각오를 나타낸 것이다. 20세기 초, 당시 시대상이 워낙 국경을 넘나들며 이데올로기적 광풍이 불던 시대이니 무솔리니한테서 도망 나와 투쟁했던 사람들과 스페인 내전 당시 국제여단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미래를 예측할 때 과거의 역사를 불러오는 것은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를 준비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한반도의 역사에서 크고 작은 일이 한 두 개는 아니지만, 한반도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역사적 사실은 크게 고려말의 왜구침략과 임진왜란 그리고 지난 1910년 경술국치(국권피탈, 한일합방)로 이어진다. 일본과 있었던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우리는 한 번도 일본을 침탈한 적이 없지만, 일본은 늘 한반도를 원했다. 단순하게 식량과 사람을 뺏어가기 위한 고려말의 왜구침략에서부터 명나라로 가는 길을 열어달라던 임진왜란, 한반도를 완전히 지배하기 시작했던 경술국치까지, 일본은 역사상 늘 한반도를 원해왔다. 그리고 지금은 아니라고 하지만 근현대의 격동기에서 일본의 정치인들은 한반도 침탈에 선두에 섰던 인물들이 묻혀 있는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멈춘 적이 없다. 역사 이래 한국과 일본의 사이가 가장 좋아지고 있다는 최근,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일본 총리 그리고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캠프 데이비드에서 준군사적 합의를 하고 발표를 한 후에도 일본의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보내 알 수 없는 전의를 다졌다. 야
화성은 큰 도시다. 인구수는 100만에 가깝고 면적은 서울보다 1.4배 넓다. 그리고 성장권역에 속한 도시이기 때문에 제조장이나 공장의 설립이 쉽다. 공장이나 제조장의 허가 요건이 충족되면 화성시는 사업체와의 마찰을 피하고자 사업을 지속해서 승인해왔다. 그런 막 개발의 시간이 벌써 20년이 흘렀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 화성의 동쪽 끝자락에 정부는 대한민국 최대규모의 신도시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당시를 살았던 화성 시민의 입장으로 보면, 화성시의 동쪽 끝, 개발의 호재가 엎어, 거의 버려지다시피 한 무관심의 땅에 신도시가 만들어지고 인구가 늘어나면 좋을 것 같았다. 다들 환영 일색이었다. 그러나 20년의 세월이 되어가는 즈음, 화성시의 동탄은 불필요한 괴물이 됐다. <전경만의 색깔있는 이야기> 서울보다 1.4배나 넓은 면적의 화성시 중에서 오산보다 작은 동탄에 화성시 인구의 절반이 몰려 살면서 무려 16년간 동탄지역에 가까운 정치인들이 시의 수장으로 배출됐다. 이 때문에 화성시 안에서도 동탄은 막강한 정치권력과 행정 권력을 손에 쥐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화성시의 서부는 갈수록 낙후되어 갔다. 절대적 낙후는 아니더라도 상대적 빈곤감은 화성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질 당시의 학교 분위기 중에는 ‘신체포기각서’라는 것이 유행을 했었던 적도 있었다. 2010년대를 전후해 고등학교에 다녔던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고 잇는 내용들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작성하는 신체포기각서라는 것은 선생의 체벌에 항의하지 않겠다는 개인 서약 같은 것이다. 덕분에 학생들은 선생들의 무차별적인 폭력과 기합에 힘들어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리고 선생들의 차별적인 행동들은 학생들의 반감을 사기에 충분했지만 이를 유념하는 선생은 적었던 시기가 그때이다. 그리고 선생들에 의한 차별과 폭력이 극에 달하던 때에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지난 2010년 9월 당시 교육감이었던 김상곤 교육감은 자신의 공약이었던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해 위원회를 구성해 어렵게, 어렵게 공약을 만들었다. 학생인권조례는 지방자치단체별로 다르기는 하지만 주요 내용은 특별한 부분을 제외하면 대동소이한 편이다. 학생인권조례의 핵심은 선생들의 체벌 금지와 차별금지가 주를 이룬다. 선생에 의한 학생체벌과 차별은 학생인권조례가 시작됐음에도 수년간 공공연하게 이루어져 왔고 차별금지는 조례상으로만 존재하는 문구가 된 지 오래다.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 결정을 둘러싸고 일본이 아닌 한국의 거대정당들이 답도 없는 소모적 논쟁을 벌이면서 혐오의 정치를 더 극성스럽게 저질화하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한국 국민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고, 마치 일본 정부를 대변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 “어느 나라 정당이냐?”는 비아냥거림에도 흔들림 없이 일본 정부의 ‘안전하다’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며 득도 없이 일본 편에 서 있다. 반면 야당인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일본과 공범’이라는 입에 담기 어려운 표현을 써가며 비난에 비난을 더하는 초등수준의 극한으로 가고 있다.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우리나라의 거대정당들이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 국민에게 어떤 방식으로 신뢰를 줄 것인가의 문제는 아예 생각조차 없는 것처럼 드잡이질을 반복하면서 갈수록 혐오의 정치가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최근의 일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래도 따져봐야 한다면 우선 후쿠시마 오염수와 관련한 일차적인 책임자는 일본과 일본 정부다. 일본 정부는 오염수를 안전하게 처리했기 때문에 해양에 방류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자신들의 의지를 국제사회에 관철하려 하고 있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할 당시만 해도 그것이 2차 대전의 시발점이 될 줄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당시 폴란드를 노리고 있었던 나라는 독일뿐만 아니라 러시아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폴란드는 무너질 것이라고 본 나라들이 많았다. 그리고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육군을 보유하고 있다고 알려진 프랑스가 독일의 남침을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랑스는 독일의 침공에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마지노선이 뚫리자마자 프랑스 파리를 점령한 독일은 프랑스에 ‘비시정부’라는 괴뢰정부를 세웠다. 이후 프랑스의 비시정부는 연합국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성공하고 파리로 진격한 1944년 8월에 사라진다. 전쟁이 끝나고 프랑스 독립에 일등 공신이 된 드골은 비시정부에 협력했던 사람들을 처단했다.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프랑스 해방 이후, 프랑스는 비시정부와 나치에 협력했거나 자발적 노동을 제공한 프랑스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벌인다. 이때 가장 가혹하게 처벌받은 집단이 바로 언론이다. 나라를 되찾은 드골은 제일 먼저 언론개혁을 시작했다. 지난 1944년 9월, 프랑스 임시정부는 나치 혹은 프랑스의 비시정부에 순종한 언론사들 모두
뉴스가 온갖 추잡한 정쟁으로 뒤덮이면서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수준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더 좋은 방향으로, 어떻게 하면 더 나을까를 논의하라고 했더니 반대 방향으로만 움직이고 있다.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상대측 흠집 내기를 통해 자신의 정당성이나 우월성을 증명하려는 정치는 삼류 중에서도 삼류다. 그 삼류 쇼를 매일매일 반복해 시청해야 하는 국민의 입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정치인의 부도덕은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지만 그것이 국민을 위한 새로운 정책개발에 우선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정치권은 오직 상대방의 부도덕만을 부각하게 시키는 것이 지상과제인 것처럼 움직이고 있다. 대통령 부인의 사생활에서 흠집을 찾아낸다 한들 그것이 대한민국을 정지시킬만한 것이 아님에도 오직 흠집 들추기 한길로만 빠지는 야당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싶다.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그리고 야당 인사들의 과거 행적만 따라다니며 자신들의 정치적 실수를 야당 탓으로만 돌리려는 여당에서도 일말의 희망은 없다. 오직 실망만 가득할 뿐이다. 또한, 총선이 다가오면서 여당, 야당 가릴 것 없이, 후보 예상자들끼리 오직 추문 들추기에만 바쁘
화성의 대표적 축제인 화성 뱃놀이 축제가 지난 6월9일부터 11일까지, 4일간 전곡항 일원에서 열렸다. 행사의 주최측은 약간 과장해 약 20여만 명의 인원이 축제를 즐겼다고 밝혔다. 이 행사에는 ‘화성동행’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화성시청 출입기자단도 적극적으로 행사에 참여했다. 화성시에 적을 둔 화성시청 출입 기자들이 자원봉사 형식으로 참여한 축제는 3일간 지속 되며 많은 여운을 남겼다. 행사를 준비한 사람들은 나름대로 더 안전하면서도 시민을 위한 축제가 되었으면 했고, 시민들은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원했다. 그중에 하나가 ‘화성동행’이 준비한 시민이 주인공이 되는 시간이었다.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현직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뛰어다니며, 종일 시민들의 표정을 담아 즉석에서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시민과 함께 화성이라는 큰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나갔다. 물론 몸은 힘들었다. 3일간 행사의 현장 한복판에서 축제를 준비한 일원들과 함께 시민을 위한 서비스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나름대로 화성의 일원으로 축제에 참여했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전체적으로 행사는 잘 치러졌다. 그러나 화성이 가지고 있는 바다라는 자원을 알리기에는 조금
전쟁도 외교의 일환이라는 말은 현실이다. 전쟁의 수고로움을 덜기 위해 외교라는 고상한 행위로 포장하고 있지만 정치의 연장선에서 전쟁은 확실히 외교의 연장이다. 그리고 외교는 정부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꾸준하고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는 참패의 수준을 넘어 완전 항복 수준의 외교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수년간 일본 정부는 수장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외교상의 몇 가지 입장이 있었다. 첫째는 일본을 가해자인 전범국이 아니며 오히려 원폭으로 인한 피해자 임을 강조하는 것과 2차 대전 당시 일본이 저지른 성범죄와 강제노역은 없었다는 주장들이다.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일본의 이런 태도는 주변국들과 끊임없는 마찰을 일으켜왔으며 특히 우리 국민들에게는 공분을 사기에 충분한 주장들이었다. 그람에도 일본은 자신들의 뜻이 관철될 때까지 반복적으로 주장을 거듭하고 있다. 때로는 경제적 지위를 이용해서까지 일본은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그간 우리 정부는 일본의 반복적인 주장에 대해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주권 기구 중 하나인 대법원은 일본의 강제노동에 의한 피해 사실을 확인하고, 일본 기업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라는 심정으로 시작한 경인뷰가 어느덧 7주년이 됐습니다. 그리고 화성시에 자리를 잡은 지도 3년이 되어갑니다. 생각해보면 지난 7년간 경인뷰는 많은 양의 기사를 생산하고 유통 시켜 왔습니다. 경인뷰가 생산한 수많은 기사 중에 어떤 것은 정책에 반영되고, 또 어떤 것들은 시정조치 되는 단순한 것들도 있었으며 또 그 어떤 것들은 아예 무시되기도 했습니다. 정책에 반영된 것 중에는 학교 밖 아이들의 이야기 중, 학교 밖 아이들도 무상급식을 받을 권리가 있고, 학교 안에 아이들이 지원받는 각종 혜택도 동일하게 주어질 수 있어야 한다는 기사는 현재 일부가 반영되어 가고 있습니다. 기사를 쓸 때는 힘들었는데, 누구인가 나중에 그런 것들을 정책에 반영할 때는 스스로 위안이 됩니다. 또 경기미와 경기도의 산성 기사를 연재할 때는 무척 힘들었는데 지금은 그런 기사들의 영향으로 경기도의 쌀 정책이나 문화재 보관 등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하는 소식이 가끔 들려 옵니다. 지나온 7년을 다 정리하자면 너무 길어져서 짧게 줄이겠습니다. 다만 지난 7년 동안 최선을 다해 정책기사를 발굴 생산한 것처럼 앞으로의 7년도 시민 생활에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