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중섭의 작품 ‘돌아오지 않는 강’
29일 오후 4시 서울 강남구 신사동 본사에서 케이옥션 3월 경매가 개최된다.
총 114점, 약 102억원어치 작품이 출품되는 이번 경매에는 알렉스 카츠와 조엘 메슬러의 대작을 선두로 야요이 쿠사마, A.R. 펭크, 장 미셸 오토니엘, 아야코 록카쿠 등 해외 인기 작가들의 수작과 이우환의 조응 4점 세트 작품, 바람 시리즈 작품 2점을 비롯해 한국 근대 미술을 조명할 수 있는 주요 작가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유영국, 장욱진, 도상봉, 오지호 등의 작품이 골고루 출품된다. 특히 이들의 1950년대 작품도 포함되어 있어 전쟁이라는 역사적 상황에서 폐허를 헤치고 살아남은 작가들의 작품을 비교해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정영주의 작품 2점과 옥승철의 대형 작품도 눈길을 끈다. 고미술에서는 십장생도와 분청사기박지모란문주자, 백자호, 백자대합 같은 도자기 그리고 창살문삼층장, 이층서탁 등 목가구와 이당 김은호, 우현 송영방, 고암 이응로의 회화 작품이 경매에 오른다.
경매 출품작은 18일부터 경매가 열리는 29일까지 케이옥션 전시장에서 관람할 수 있다. 프리뷰 관람은 예약 없이 무료로 가능하며, 프리뷰 기간 중 전시장은 무휴이다. 경매 참여를 원하는 경우 케이옥션 회원(무료)으로 가입한 후 서면이나 현장 또는 전화 응찰, 그리고 온라인 라이브 응찰을 통해 참여할 수 있다. 또한 경매가 열리는 29일 당일 경매 참관은 회원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가능하다.
◇ 격렬했던 한국 근대 시기를 고스란히 담은 작가들의 작품을 조명
한국 근대 미술에 대한 재조명 움직임은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미술계 전반에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최근 이건희 컬렉션으로 촉발된 근대 미술에 대한 관심으로 근대 미술의 중요성과 재평가에 대한 필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근대 미술은 과도기적인 경계미술로, 유영국,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도상봉, 장욱진, 오지호 등을 주요 작가로 꼽을 수 있다.
이번 경매에서는 근대 작품의 형성 시기에 이들이 다른 문화와의 교류를 통해 어떤 창작 활동을 펼쳐갔는지를 살펴보며, 한국의 근대 미술을 보다 많은 애호가들과 공유하는 기회가 되고자 한다. 또한 1950년대 제작된 장욱진, 이중섭, 도상봉의 작품은 전후 세대라는 역사적 상황에서 폐허를 딛고 살아남은 작가들이 파괴된 삶과 상처를 개성으로 소화해 그림에 담아냈다. 장욱진의 그림에는 시대를 초월한 개인의 순수함이, 이중섭의 그림에는 시대를 비추는 한 편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그리고 도상봉의 그림에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화가의 미학이 담겨있다.
김환기와 함께 한국 추상화단의 효시이자 거장 유영국은 1935년 일본 도쿄 문화학원에서 입학하며 본격적인 미술 수업을 시작했고, 한국 역사상 최초로 추상화를 시도했다. 그는 한국의 자연을 모티브로 해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자연의 본질을 추구하려 했고, 선, 면, 형, 색 등 기본적 조형 요소를 사용해 화폭을 채웠다. 경매 출품작 ‘Work’는 1980년에 그린 것으로, 작가가 좀 더 평화롭고 자연에 가까운 그림들을 제작하던 시기의 작품이다. 유영국이 사실적인 자연을 그린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추상화된 조형은 오히려 관객으로 하여금 자연의 정수와 서정성을 느끼게 한다.
서양 미술을 한국 미술계에 적용하려 노력한 작가 박수근은 화강암 재질 같은 독특한 마티에르와 간결한 필선으로 꾸밈없고 강직한 한국인의 삶과 가치관을 작품화했다. 이번 경매에 출품된 박수근의 ‘무제’는 미공개작으로 노상에 앉아 있는 두 남자와 일을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두 여인 그리고 아이들이 등장한다. 박수근의 작품에서 여성과 남성이 동시에 등장하는 경우는 드문데, 아마도 이는 유교사회의 인습이 남아 있던 자연스런 시대의 풍경으로 여겨진다. 손바닥 남짓한 화면에 하는 일 없이 앉아 있는 것으로 보이는 두 남자, 이들과 대조되게 머리에 짐을 인 두 여인 그리고 아이의 등장은 화면을 꽉 채우고 있다. 그 당시 서민들의 일상을 꾸밈없이 담은 이 출품작의 추정가는 1억원에서 3억원이다.
우리나라의 자연과 기후에 맞는 빛과 색채를 통해 한국적 인상주의를 완성한 오지호는 바다가 보이는 항구, 눈 덮인 겨울 풍경, 초가집 등을 종종 그렸다. 이번 경매 출품작인 ‘풍경’은 바다가 보이는 마을을 인상주의 화법으로 그렸는데, 대상을 과감하게 생략했으나 잘 짜인 구도에 빛과 색채가 조화된 작품으로 한국적 인상주의 화풍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알렉스 카츠의 대형 꽃 회화 작품 ‘Yellow Goldenrod (PA)’이 출품된다. 카츠는 1950년 미국 메인(Maine)주에 위치한 여름 별장에서 화병에 꽂힌 꽃을 그리기 시작했고, 2000년 이후 그동안 탐구해왔던 꽃을 다시 캔버스에 담게 된다. 그러던 중 전 세계가 코로나로 힘들었던 시기, 꽃 그림에 더욱 매진하게 된다. 대형 캔버스에 시원하게 그려진 꽃들 사이를 걷다 보면 거대한 존재가 주는 압도감과 함께 꽃이 주는 아름다움과 찬란함, 그리고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다.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만의 스타일과 화풍으로 화업을 이어온 95세 노장의 아름다운 깊이를 이번 경매 출품작을 통해 느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