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정치인이 민주주의를 말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민주주의가 맞는지는 고민해 봐야 할 문제다. 제도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에는 민주주의적 제도라기보다는 사회주의적 제도가 참 많다. 일본이나 미국에서 보면 불가사의할 정도의 제도들, 의료보험, 무상급식, 누리과정 등 사회주의적 요소들이 참 많은 제도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보란 듯 시행하고 있는 제도들이다.
이외에도 전기, 가스, 지하철, 버스 등과 관련된 사업들도 완전히 민영화되지 못하고 준 공영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자본주의 국가임에도 우리가 사회주의적 요소가 가미된 이런 제도를 고수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나라 국민이 ‘우리’라는 단어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우리’라는 공동체적인 단어에는 배려가 들어가 있다. ‘나 하나쯤’이 아니고 우리라고 생각해보면 지켜야 할 것들이 많다.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면 내가 편안해지는 구조에 익숙한 한국인이기에 공동체적인 사회구조나 시설물에 대해 익숙한 편이다.
물론 ‘나’와 ‘너’로 구분되는 것이 편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나’와 ‘너’로 구분됨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 우리 가족, 우리 아파트가 내 집, 내 가족, 내가 사는 아파트보다 쓰임이 많은 이유에는 공동체적인 삶에 익숙한 우리의 모습에 있다. 그래서 사회주의건 자본주의건 국민의 뜻이 그거다 하면 시행해 버리고 마는 우리 식의 민주주의가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진행 중이다. 우리식의 민주주의가 정착되는 과정은 험난했지만 우리는 이룩했고 앞으로도 더 만들어 갈 것으로 보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도 한국에 들어와 살다 보면 ‘우리’라는 말에 익숙해지고, 자기도 모르게 나와 함께 남을 동시에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내’팀이 아닌 ‘우리’팀에서 살고, 지고 그렇게 어울리다 보니 한국인이 되어버린 외국인들은 고국으로 돌아가서도 한국형 공동체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고 한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보다 이념이 먼저라는 생각에 ‘너는 빨갱이,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라는 말들을 사용해가며 남을 재단하고 평가하는 정치인들이 많다. 또 수박 정치인이면 어떻고, 토마토 정치인이면 또 어떠한지는 모르겠다. 그저 민의를 먼저 생각해 국민에게 바른길을 제시하고, 국민으로부터 추인받으면 시행되는 나라에 살면서 죽은 이념의 꼬랑지를 잡고 정치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는 사실이 어이가 없을 뿐이다.
사람들의 생각에 행위를 입히는 일을 절차라고 하고 그 논리의 바탕이 되는 것은 사상이다. 좋은 생각은 받아들이고 나쁜 제도는 고쳐 쓰면 될 이이지, 생각이 다르다고 공격의 대상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생각이 다르다고 총칼로 국민을 위협한 고위 정치인은 들은 모두 국민에 의해 퇴출당했거나 심판받았다. 역사란 그렇게 이어지고 만들어진다.
때론 현실의 발견에서 역사가 바뀌기도 하며 수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역사에서 바뀌지 않는 진리가 민의다. 민의를 거스르면 우리에서 퇴출당한다는 사실에서 배울 것이 많다. 우리로 살기위해 법이나 조례라는 규칙을 만들면서 특정 집단의 이익이나 ‘내’가 아닌 ‘우리’라는 공동체 인식을 조금이라도 더 생각해보는 정치인!, 그런 정치인을 급구하고 싶은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