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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관부를 위하여/ 김애자

김애자(1943년~)

경기도 춘천 출생

방통대 국문과 졸업

1989 시대문학 수필부문 등단

2001 예술세계 시 부문 등단

2017 시조시학 시조 등단

산문집: ‘그 푸르던 밤안개’ ‘추억의 힘’

시집: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수원문학 작품상, 경기문학인상 수상

 

 

주사 맞는 고목 보며

시든 내 안을 들여다본다.

눈 떠라 깨어 있어라

힘껏 빨아올려라

슬픔과 아픔까지도

사라져 가는 저 모든 것

 

너를 통해 길어 올린

세상사를 깊이 품어

그윽한 詩香 품는

나무 한 그루 키워내면

샘솟는 줄기찬 힘으로

다시 길을 떠나리니.

 

시 읽기 / 윤 형 돈

 

식물의 부위중 물을 운반하는 것을 돕는 기관이 ‘물관부’다. 부드러운 유조직(柔組織)으로 살아있는 세포로 이루어진 헛물관을 켜기도 한다. 나무에게 필수적인 부분이 물관부(xylem)로 뿌리에서 흡수한 물과 양분의 이동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수 백 개의 가닥을 이루면서 지속적으로 물과 영양분을 실어 나른다. 그것은 나이테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물관부의 가닥들은 마치 파이프를 연결한 듯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무릇 줄기와 가지가 목질로 된 다년 생 식물을 세인들은 소위 나무(tree)라 부르고 예찬하기도 하는 것이다.

 

간혹 정원을 걷다보면 몸통에 주사액을 꽂고 있는 고사목을 보게 된다. 병 들었으니 물과 영양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고 수액이 부족하다. 시인은 이를 예의주시하여 ‘주사 맞는 고목을 보며 시든 내 안을 들여다본다.‘고 표현했다.

 

시 제목으로 차용한 ‘물관부‘라는 단어 또한 신선한 키워드다. 누군가 말했다. 단어는 실존의 기초이며 노래와 사랑의 근간이라고. 고양된 표현은 의미작용을 상승시키며 진심을 담아낸다. 단어 자체가 시이며 인간의 영혼이 시들고 아플 때 치유역할을 한다. 이처럼 ’물관부‘와 같은 시어는 곧 낱말이며 지혜, 정액, 존재, 실체, 소리, 색깔이다. 한마디로 단어에는 생의 가치를 보존하는 마법적인 힘이 있다. 그래서 죽어가는 나무를 살리는 ’물관부‘의 시상이 도입된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시인은 문득 링거를 꽂고 있는 고목枯木을 보며 침체된 자신을 일깨운다. ‘눈떠라 깨어 있어라 힘껏 빨아올려라’ 느즈러진 자신의 행보를 다잡고 재촉한다. ‘슬픔과 아픔까지도 사라져 가는 저 모든 것’을 윤동주 시인처럼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하기 위해서다.

 

그것은 곧 ‘그윽한 시향詩香 뿜는 나무 한 그루 키워내고’ 다시금 그에게 주어진, 천형 같은 숙명의 길을 가기 위해서이다. 그 길이 어딘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생명의 ‘물관부를 위하여’ 다시금 ‘샘솟는 줄기찬 힘으로’ 계속 걸어 나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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