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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스러운 자들의 더러운 정치

5`18 망언 일삼는 자들 한국정치에서 완전 퇴출시켜야

호모 사피엔스라고 불리는 종족이 동족을 향해 학살을 벌인 예는 많다. 그러나 인류가 발전하면서 동족에 대한 학살은 점차 줄어들었다. 인류가 인류를 적대시하고 대량의 학살을 일으켰던 제1차 대전은 많은 것을 깨우치게 했다. 그리고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자고 약속했었지만 그 약속은 오래가지 못했다. 같은 세기에 인류역사상 가장 악랄한 전쟁이었던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

독일은 유럽을 그리고 일본은 동아시아를 초토화 시켰으나 결국 패망의 길을 걸었다. 이후 인류는 자유에 대한 의지를 확고히 하고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자는 다짐에 다짐을 거듭했으나 언제나 다짐뿐이었다. 세계는 또 다시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으로 나누어 다투었고, 한반도는 그 희생양이 됐다. 사실상 세계대전과 다름이 없었던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끝으로 대규모의 다자간 전쟁은 끝이 났다. 그러나 자유를 향한 열망은 또 다른 형태의 학살을 불러왔다. 파시스트를 꿈꾸는 많은 독재자들은 전쟁과 학살을 끊임없이 반복해왔다.

현대사에 들어서면서 국가간 전쟁이 아닌 파시스트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자국민 학살은 중국과 한국에서도 발생했다. 비교적 근대화가 늦게 시작된 한국에서는 자유라는 이름을 앞세운 파시스트 군사정권이 오랜 기간 통치를 했었다. 그리고 군사정부의 통치자가 완전무장한 군대를 동원해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자국민을 학살한 대표적 사건이 광주민주화 운동이다.

광주민주화 운동은 지난 1980년 5월18일 전라남도 광주에서 발생한 7일간의 학살사건을 말한다. 이 학살사건으로 인해 일주일 간 사망자는 193명이 발생했다. 이 중 군인 23명, 경찰 4명, 민간인 166명이다. 부상은 852명으로 확인되고 있다.

중국은 지난 1989년 6월4일 중국의 수도 베이징 한복판에서 발생한 소요와 시위를 탱크를 앞세워 무력 진압했다. 이른바 천안문 항쟁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중국 관리들의 부패를 막아달라는 작은 소요에서 시작해 나중에는 우리의 5`18 항쟁보다 규모가 커졌던 사건이었다. 천안문 항쟁으로 희생된 사망자에 대한 정확한 집계는 없으나 대략 1만명 내외일 것으로 추청하고 있다.

518 항쟁과 6`4 천안문 항쟁의 공통점은 모두 억압에 대한 반대에서부터 시작됐다. 5`18 항쟁이 신군부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했다면 6`4 천안문 항쟁은 개혁과 개방에 따른 부의 공정한 분배와 부패를 막아달라는 생존의 메시지, 즉 민중봉기에 가까운 항쟁이었다. 모두 무력진압에 의해 실패했지만 한국인과 중국인 모두 두 항쟁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비록 중국정부는 여전히 천안문 항쟁에 대한 통제를 하고 있지만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반면 한국에서는 중국과는 달리 정부가 항쟁에 대한 논의를 통제하지는 않지만 일부 정치인들이 정치적 욕심을 위해 항쟁에 희생된 사람들을 폄하하거나 항쟁발생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려는 역사 왜곡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국민의 세금으로 세비를 받아가며 정치를 하고 있다. 자국민을 버리고 혼자 살겠다고 도망갔던 선조와 이승만의 후예들이 난리굿을 펼쳐 보이는 더러운 정치판을 이제 끝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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