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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운동 100주년 요란법석보다 친일청산부터

일제에 항거하고, 군부독재에 저항한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

삼일운동은 우리나라 근대사의 주요 시발점이다. 삼일운동이후 대한민국 최초의 정부라고 할 수 있는 임시정부가 만들어졌고, 이때를 기점으로부터 우리나라는 정식으로 왕정이 폐지되고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공화국임을 세계에 알리게 된다. 그리고 대한제국은 연합국의 일원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일본의 패망을 직시했다.


   <전경만의 와이즈칼럼>

그럼에도 한국의 일부 정치세력들은 여전히 삼일운동과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이승만 정권으로부터 대한민국이 시작됐다는 망발을 하고 있다. 비록 전부는 아닐지라도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세력들은 여전히 이 땅 에서 숨 쉬면서도 자신의 뿌리를 부인하고, 역사를 훼손하고 있다. 이들이 이렇게 설치는 것은 그들의 뒤에 친일의 그림자가 아직도 건재하기 때문이다.

친일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변명은 다양하지만 대체로 업적과 친일을 따로 구분해 생각하자는 말을 많이 한다. “친일을 했지만 문학사적 측면에서 도움이 됐다. 친일파지만 음악이나 미술사에 업적이 있다. 법조계에 영향력이 있다, 우리지역 발전에 도움이 됐다”는 등의 수많은 변명들을 앞세운 친일파들의 동상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경기도 지방단체들 내부에 세워져 있는 수많은 흉상이나 동상들을 찾아보아도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심지어 우리나라는 친일인명사전에 올라 있는 음악계의 대표적 친일파가 만든 노래를 애국가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니 역사를 부인하고 민족의 저항정신을 훼손하고 폄하하는 세력들이 날뛰게 된 것이다.

우리 스스로가 준엄하게 역사 앞에 죄진 자들을 깨끗하게 청산했다면 오늘날 민주주의를 지켜내려 했던 5`18의 시대정신을 훼손하는 자들은 없었을 것이다.

프랑스의 드골이 독일정부에 협력했던 자들을 깨끗이 단죄하면서 “민주주의이건, 공산주의이건 그것은 국가를 운영하는 방식의 차이 일뿐이다. 그러나 민족을 배반하고 독일정부에 협력했던 자들을 이런저런 이유로 단죄하지 않으면 앞으로 또 이런 자들이 나라를 팔아먹을 것이다”고 말했다. 특히 드골은 친독청산과 관련해 언론, 법조, 문화계 등 지식인의 친독행위에 대해 엄하게 처벌했다. 이후 프랑스에서는 우리나라에서처럼 5`18을 부정하는 행위자들이 등장하지 않았다.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도 친일부역자들을 엄하게 처벌했어야 했다. 친일의 후손임을 자처하지는 않지만 스스로 친일의 그림자에 갇혀있다는 것도 모른 채, 시대정신을 망각하는 이들이 끊이지 않고 망언을 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 청산하지 못했던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일제에 항거하고, 군부독재에 저항한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부정하고 폄하하는 자들에 대한 처벌이 이번 삼일절을 기점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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