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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만 오래가는 야만의 시대


피해자임을 스스로 밝힌 여성들에게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어느 시대나 야만의 시대는 있었다. 20세기 들어서서 세계대전을 두 번이나 치르고 남북한의 전쟁을 포함한 대규모 국제전쟁도 두 번이나 있었다. 일류 최대의 야만의 시대라고 하면 가히 20세기를 꼽을 수 있을 만큼 20세기는 지독한 전쟁의 광풍이 인권을 유린한 시기 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의 인권은 야만의 시대에 가장 많이 성장했다.

야만의 시대를 통해 여성들은 학교를 다니고 참정권을 얻어냈으며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하나의 인격체임을 법으로 보장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법은 법일 뿐 여성이 정말 남성과 동급으로 취급되지는 않았다. 그것은 현재도 비슷하다. 유리천장은 서구와 동양을 막론하고 존재했다. 유리천장을 깨기 위한 많은 몸부림이 있었지만 현실은 유리천장을 깨지 못했다.

서구에 비해 한국은 여성의 사회진출이 많이 늦었다. 더구나 유교라는 괴물이 가지고 있는 뿌리 깊은 남녀차별에 대한 철학은 신화 속에 거인처럼 한국사회 곳곳에 존재하며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남자와 여자의 할 일을 여전히 구분지어 생각하는 사람들 다수가 존재하는 것도 현실이다.

문제는 그런 사회적, 문화적 차별이 가지고 오는 부정적인 요인들이 긍정적인 요인을 압도하면서 발생하는 부작용들이다. 최근에 속속 들어나고 있는 위계에 의한 성폭력은 남성과 여성의 구분에서 오는 부작용 중에 하나이다. 현재보다 과거에 벌어졌던 일들에 대한 폭로라는 것은 과거에 여성의 존재감이 지금보다 더 희미했음을 의미한다.

가부장적인 사회구조와 여성차별이 당연시 되는 분위기 속에서 가해진 위계에 의한 성폭력이 공개 되었을 경우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더 크게 상처받은 사회적 구조 속에서 피해자인 여성들은 차신의 피해를 차마 밝히지 못하고 꽁꽁 숨겨 왔었다. 그리고 마침내 용기를 내서 “나는 피해자 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야만의 시대를 넘어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는 시기에 아직도 야만의 사회적 풍습으로 여성을 묶어 놓았던 사슬들을 여성들 스스로가 풀어나가고 있는 형국이다. 스스로 피해자임을 밝히고 있는 여성들에게 커다란 박수를 보내는 것은 그들의 용기가 한국사회에서 질기게 연장되고 있는 더러운 야만의 시대를 종식시키려는 의지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들이 크게 용기를 내고 있는 와중에 야만적 폭력을 방관하거나 방임했던 사람들도 공동의 정범임을 스스로 알고 반성해야 일이 아직 남아 있다. 과거에 저질러졌던 성폭력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쉬쉬했던 방관자들이 “나는 죄가 없다”고 말하면 야만의 시대는 결코 끝나지 않을 수 있다. 방관했다는 것 자체가 범죄임을 인식해야 한다.

한국이 지금보다 더 좋은 나라로 거듭나기 위해서 반드시 야만의 시대는 종식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오늘 피해자임을 밝힌 여성들에게 다시 한 번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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