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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의 상징‘ 다까끼 마사오’ 미화 중단해야



       <역사의 적폐청산도 시작할 때>

‘다까기 마사오’가 한국에서 총칼로 권력을 잡아 16년간 철의 통치를 하다 말년에 전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유신헌법을 만들어 자자손손 영구집권하려 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결코 미화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본명이 박정희 임에도 불구하고 다까기 마사오라 칭하는 것은 그가 일본군국의 최정예인 일본 육사에 자원입대했기 때문이다. 다까기 마사오가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중국 열하에서 정보군 소위로 활동하는 동안에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피를 흘렸던 수많은 젊은이들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의 독립은 가능했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오끼나와처럼 독립을 포기하고 일본의 현에 편입되어 지금 일본인으로 살아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랬더라면 다까끼 마사오는 반대가 없는 영웅으로 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다까끼 마사오가 한국인으로 돌아온 것은 1945년 8월16일 12시다. 일본군이 중국 팔로군에 의해 무장해제 된 시각이 우리의 해방 다음날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완전항복을 하지 않았던들 다까기 마사오는 결코 박정희로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은 역사이며 진실이다.

일본인에서 한국인으로 얼굴을 바꾼 다까기 마사오는 우리민족의 아픔이었던 남북전쟁의 틈바구니를 이용했다. 다까기 마사오는 군인으로 변신해 자신의 안위를 챙겼다. 그리고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으며 자신에게 반대했던 이들에게 협박과 살해 총칼을 앞세운 폭력진압을 서슴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에서는 그를 찬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더니 급기야 그의 행적이 담긴 근현대사의 역사를 수구 세력들의 입맛대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다까기 마사오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친일파들이 이 땅에서 사회적 지위에 올라 한국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이 되기까지 혁명과 혁신이 부족했음을 뼈저리게 절감하는 오늘 이 시각이다.

친일파가 작곡한 애국가가 강요되고 친일의 문학가가 교과서에 등장하는 한국의 현실에서 다까기 마사오 하나쯤 할 수도 있겠지만 역사적 진실은 올바로 기록해야만 한다. 지금은 어렵겠지만 올바로 기록된 역사는 미래를 바꿀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다.

유럽의 대제국이었던 로마로 쳐들어간 한니발은 수많은 승리를 이끌어냈지만 로마는 결코 지지 않았다. 역사는 전쟁에 패배한 로마가 한니발로부터 어떻게 로마를 지켜낼 수 있었는지 기록을 통해 전하고 있다.

뜬금없이 로마 이야기를 꺼낸 것은 친일파들이 한국을 지배하는 것에 승리했을지라도 한국이 친일 모리배들로부터 한국을 어떻게 지켜내는지 역사는 기록할 것이다. 역사는 결코 누구 한사람에 의해 단순화 될 수 없으며 미화돼서는 아니 되는 진실의 기록이어야만 한다.

몇년전 썼던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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