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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는 남녀노소 빈부격차 없이 발생할 수 있다


  장애인 차별하는 사람
  우리 사회의 구성원 자격 없다.

    <전경만 와이즈 칼럼>

부모와 자식 그리고 형제간의 인연을 천륜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천륜을 어기는 사람을 아주 나쁜 사람이라고 말한다. 부모는 자식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고 자식은 또 어른으로 성장해서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천륜을 어기고 자식보다 오래 살아야 하는 것이 장애아를 가진 부모들의 비통함이다.

평생 돌봐줘야 하는 사람을 옆에 두고 세상을 먼저 하직할 수도 없는 부모들의 마음은 누가 헤아려 줘야 할까? 바로 이웃이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마을 공동체적으로 아이들을 키워왔다. 누가 잠시 자리를 비우면 자리를 비운사람의 아이들까지 돌봐주며 함께 역사를 일구어 왔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도입되고 자본에 의해 마음속에 계급이 생기고 손해 보지 않고 살겠다는 욕심이 가득해지면서 우리 아이만 소중한 사회가 되고 말았다. 강서구에서 장애아의 부모들이 학교 설립문제로 무릎까지 꿇고 앉아 학교설립을 허가해 달라고 빌었다는 뉴스가 오늘날 우리 한국 자본주의의 현주소라고 믿고 싶지는 않다.

오늘날의 장애는 선천적인 것도 있지만 후천적인 것도 많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확률이 과거 어느 때보다 높은 것이 작금의 현실임을 생각해보면 있을 수 없는 일이 강서구에서 발생한 것이다. 부모의 무릎꿇림을 보면서도 절대 장애인 학교 설립은 불가하다는 그들은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이웃이 아니다.

우리의 이웃은 어려울 때 함께 마을의 아이들을 지키고, 마을을 지키고, 나아가 함께 나라를 지키는 사람들이다. 부동산의 가치 때문에 이웃의 어려움에 처한 자녀를 외면하는 이들은 나라가 어려울 때 혼자만 살겠다고 하는 이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다. 혼자만 살겠다고 백성을 버리고 도망간 임금, 혼자만 살겠다고 한강다리를 폭발시키고 거짓말했던 대통령, 혼자만 살겠다고 장애를 가진 부모를 외면하는 이웃은 이웃이 아니다.

또한 혼자만 살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함께 살아서 번영한 인류의 적이다. 인류의 가치는 함께 살았을 때 빛이 나는 것이다. 힘만 세고 대화가 부족했던 과거의 인류들처럼 사라져야 할 인류가 바로 함께 살기를 거부하는 인류들이다.

거듭 말하지만 장애는 시간과 장소, 남녀노소, 빈부격차를 가리지 않고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장애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과신하면서 장애인을 멸시하거나 차별하는 이들을 우리 사회가 우리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깊게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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