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대한 공포 확산은 결코 좋은 정치가 아니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사람들이 죽는 이유는 암과 교통사고다. 지난 2015년 기준, 우리나라의 암 환자는 대략 21만 명이고 이중 30%에 해당하는 약 7만 명의 사람들이 암으로 죽었다. 일 년에 약 7만 명이라는 숫자가 암으로 죽는 다는 것은 매우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한국의 진보정치권이나 보수 정치권에서 암 때문에 권력구조가 바뀐다고 생각하는 정치인은 없다. 권력구조의 변화 또는 집권할 수 있는 정당의 변화는내적 요인에서 기인하는 것이 많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는 과정을 살펴보면, 박근혜 전 정권과 비선실세 최순실의 유착에 대한 소문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국민적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박근혜 전 정권이 특정한 누구인가에게 권력을 몰아주었기 때문에 기회의 평등이라는 우리헌법의 가치가 훼손됐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박근혜 전 정권은 처참하게 몰락했다. 몰락의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현 문재인 정부다. 문재인 정부의 기조는 과거 민주당이 추구했던 햇볕정책을 계승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남북문제는 북한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고, 대결보다는 협력을 그
국민 분열은 '반민특위'가 아니라 몰지각한 정치인의 입이 만들어 내는 산물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지만 반대로 변화하지 않는 것도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통일신라가 됐고, 통일신라는 고려가 되고 또 고려는 조선이 됐다. 조선은 일본의 식민국가가 됐으며 다시 독립해 대한민국이 됐다. 나라의 이름이 변하고 사상이 변하고 학문 자체도 끊임없이 변했다. 그러나 한반도에 사람이 살아왔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한국인이 한국인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정체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한반도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인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말과 역사를 함께 공유하고 가치관은 다르지만 일부 공유하는 가치관을 함께 가지고 있다고 한국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식민지에서 남북분단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은 다양한 역사적 사실에 직면했고 나쁜 역사의 방향을 극복해 가며 민주주의라는 좋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식민지시대는 막을 내렸고 서로가 서로를 해방하겠다며 벌인 남북전쟁도 이겨냈다. 비록 북한과 아직 대치하고는 있으나 남쪽에서는 군부 독재의 시대가 끝나고 민주주의가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았다는 것은 우리사회가 다양한 가치관을 수용하고, 서로 다름을
인공지능이 서비스산업을 대체하는 시대에 대한 준비가 필요 산업혁명이후 인간은 혁신적인 기술들을 개발해냈다. 그중에 전화는 가장 혁신적인 문명의 도구가 됐다. 전화 이전의 세대가 연락을 주고받으려면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었다. 가령 전화가 없었던 시절, 서울에서 부산까지 연락을 하려면 아무리 빨라도 일주일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연락을 가지고 이동을 해야 하는 노동력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러나 전화는 전화선이 가설되어 있는 모든 거리 안에서 누구와도 즉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했다. 전화의 진화는 새로운 세계를 우리 앞에 가져다 놓았다. 과거에는 훌륭한 사상가나 과학자들의 논문이 발표되어도 이를 개별적인 사람들이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 그러나 지금은 전화의 발전 즉 정보통신의 발전으로 순식간에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발견에 대해 알 수 있게 됐다. 전화의 발전은 가히 21세기의 혁명이라 할 수 있고 통신혁명은 현재도 진행 중에 있다. 그것이 ‘스마트폰’이라는 기계다. 현재는 스마트폰의 기술에 인공지능까지 합쳐져, 스마트폰 자체가 내가 좋아하는 음악적 취향과 드라이브코스까지 그리고 내가 자주 연락한 사람들의 모임까지 인지하고, 내가 원
3`1절의 정신과 기백 남북화해와 전진으로 세계를 여행하고, 외국인과 함께하고, 다문화가정이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민족주의가 이 시대의 흐름은 아니라지만 우리나라에서의 민족주의는 본의 아니게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 민족주의를 부르짖는 것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 청산하지 못한 끝나지 않은 역사가 진행 중에 있기 때문이다. 청산되지 않고, 치유되지 않은 아픔들이 끊임없이 우리 안의 민족주의를 불러내고 있다. 3`1절은 그 정점에 서있는 우리 안의 슬픔이자 자랑이다. 그날 온 민족의 구성원들이 독립을 외쳤으며, 그날을 기점으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었다. 그러나 가해자들은 여전히 웃고 있으며, 가해자들의 편에 서서 함께 했던 자들은 만세를 불렀던 사람보다 더 편하게, 두 다리 뻗고 잘 살고 있는 현실이 우리 안에서 민족주의를 꺼지지 않도록 하고 있다. 3월1일을 기점으로 시작된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는 임시정부를 만들었고, 파시스트에 대항에 무력으로 나라를 다시 찾겠다는 결의를 만들어 냈다. 결의는 김구, 윤봉길, 안중근, 김원봉, 김상옥 등 일일이 다 열거하기도 힘들만큼 수많은 열사들을 배출해냈다. 20세기에 우리 민족이 배
역사를 부정 하는 자들의 망언이 나라를 팔아먹었다. 뼈가 시릴 정도의 가혹한 통치로 조선백성을 탄압했던 구한말의 정치가 이완용은 3`1 운동에 대해 “불량선인들이 들고 일어나 치안이 어지럽고 무지몽매한 학생들의 망동”이라 규정하고 구한말의 국민들에게 “가만있으라.”는 말을 거듭 강조했다. 그리고 21세기 들어서서 전두환은 광주시민들에게, 촛불정국에서는 문창극 전 총리가 국민들에게 “가만있으라”라고 했으며, 황교안 전 총리는 박근혜 탄핵을 승복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있다. 또한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 출마한 김진태 의원과 김순례 의원은 5`18을 부정하는 말을 했다. 5`18의 역사는 신군부의 군사통치에 대한 항거이자 저항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역사를 완전히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것도 일반 국민이 아닌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자격으로 한 말이다. 뒤이어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들의 말에 대해 개인적 성향의 차이라고 했다. 이들의 공통적인 생각의 저변에는 대한민국의 민중들이 어떻게 불의에 저항하고 투쟁해 왔으며. 어떻게 나라를 지켜왔는지 철저히 부정하고 지배자적인 시각에서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 유리한 것만을 역사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에
일제에 항거하고, 군부독재에 저항한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 삼일운동은 우리나라 근대사의 주요 시발점이다. 삼일운동이후 대한민국 최초의 정부라고 할 수 있는 임시정부가 만들어졌고, 이때를 기점으로부터 우리나라는 정식으로 왕정이 폐지되고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공화국임을 세계에 알리게 된다. 그리고 대한제국은 연합국의 일원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일본의 패망을 직시했다. 그럼에도 한국의 일부 정치세력들은 여전히 삼일운동과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이승만 정권으로부터 대한민국이 시작됐다는 망발을 하고 있다. 비록 전부는 아닐지라도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세력들은 여전히 이 땅 에서 숨 쉬면서도 자신의 뿌리를 부인하고, 역사를 훼손하고 있다. 이들이 이렇게 설치는 것은 그들의 뒤에 친일의 그림자가 아직도 건재하기 때문이다. 친일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변명은 다양하지만 대체로 업적과 친일을 따로 구분해 생각하자는 말을 많이 한다. “친일을 했지만 문학사적 측면에서 도움이 됐다. 친일파지만 음악이나 미술사에 업적이 있다. 법조계에 영향력이 있다, 우리지역 발전에 도움이 됐다”는 등의 수많은 변명들을 앞세운 친일파들의 동상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경기도 지
5`18 망언 일삼는 자들 한국정치에서 완전 퇴출시켜야 호모 사피엔스라고 불리는 종족이 동족을 향해 학살을 벌인 예는 많다. 그러나 인류가 발전하면서 동족에 대한 학살은 점차 줄어들었다. 인류가 인류를 적대시하고 대량의 학살을 일으켰던 제1차 대전은 많은 것을 깨우치게 했다. 그리고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자고 약속했었지만 그 약속은 오래가지 못했다. 같은 세기에 인류역사상 가장 악랄한 전쟁이었던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 독일은 유럽을 그리고 일본은 동아시아를 초토화 시켰으나 결국 패망의 길을 걸었다. 이후 인류는 자유에 대한 의지를 확고히 하고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자는 다짐에 다짐을 거듭했으나 언제나 다짐뿐이었다. 세계는 또 다시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으로 나누어 다투었고, 한반도는 그 희생양이 됐다. 사실상 세계대전과 다름이 없었던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끝으로 대규모의 다자간 전쟁은 끝이 났다. 그러나 자유를 향한 열망은 또 다른 형태의 학살을 불러왔다. 파시스트를 꿈꾸는 많은 독재자들은 전쟁과 학살을 끊임없이 반복해왔다. 현대사에 들어서면서 국가간 전쟁이 아닌 파시스트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자국민 학살은 중국과 한국에서도 발생
제2차 동아시아 전쟁을 부추기는 거짓 역사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상당히 가까운 나라다. 동력이 없는 배를 가지고도 갈 수 있을 만큼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이지만 감정적으로는 북한보다 더 먼 나라이기도 하다. 그리고 독도 영유권 문제로 늘 사이가 좋지 않은 관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은 경제적으로 협력을 해야 하는 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감정의 골이 시간이 지날수록 풀어지지 않고 깊어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 개인적인 문제라면 서로 얼굴을 보지 않으면 되겠지만 독도의 영유권 까지 걸려있는 국가대 국가의 문제라면 결국 전쟁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일본이 자라나는 세대에게 계속해서 독도를 일본의 영토라고 가르치고 또 국민들에게 강제로 독도에 대해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입을 하다보면 일본 국민 대다수가 한국이 불법적으로 독도를 강탈했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한국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 마치 우리 한국이 지난 2000년 동안 일본에 의해 피해를 봤다고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많은 한국인들은 일본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다. 우리는 모든 세대에서 문명을 가지고 역사를 배우는 기간 내내 “일본은 불편부당한 나라”라고 배우고 있다. 고대국가인
까마귀 날자 배 떨어졌다? 고구려의 시조새로 유명한 ‘삼족오(三足烏)’는 까마귀이다. 태양 속에 산다는 세발달린 까마귀는 천지인을 상징하기도 한다. 주로 북동아시아의 역사유물에서 발견되는 삼족오는 북부여, 고구려, 고려의 유물에서 주로 발견되고 중국과 일본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일본은 이미 오래 전에 삼족오를 브랜드화 하기도 했다. 동북아시아를 제패했던 고대인들, 특히 부여의 일족임을 의미하는 삼족오는 백제의 시조인 온조를 따라 남하했다. 온조가 한강유역에 궁을 세우고 나라를 건설했을때도 삼족오는 그들의 상징이었으며 고구려와 형제의 나라이기에 삼족오를 사용하는 것에 큰 이견은 없었으리라. 그러나 까마귀는 유교가 보급된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흉한 소식을 가져다주는 새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까마귀가 주로 동물의 사체 등을 먹는 것을 본 이들이 퍼뜨린 소문일 수도 있고 유난히 흰색을 좋아하는 우리민족의 습성 탓일 수도 있다. 현대에 들어서서 다시 까마귀가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삼족오를 신물로 삼았던 고구려와 백제의 위대한 신화를 우리가 이어가고자 하는 뜻을 담고 있으며 언제인가는 북방영토를 다시 회복하겠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그런 뜻을 이어 받은 도시
상용화되기 이전에 실업자 발생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최근 한 외신에 의하면 술을 먹고 운전은 하지 않았으나 음주운전으로 단속된 사례들이 가끔 나온다. “음주는 했으나, 차에는 탔고, 운전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차는 정상적으로 집까지 운행됐다”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는 자율주행자동차에 대한 이야기다. 아직 관련 법률이 만들어지지 않아 음주운전으로 단속되었겠지만 자율주행자동차에 대한 개념과 관련 법률이 완성되면 술을 먹거나, 먹으면서도 자신의 차에 탈 수 있는 날도 올 것으로 본다. 만화에서나 나올법한 자율주행자동차 이야기는 이제 현실화 되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자동차 업계도 최근 자율주행시험을 자주하고 있으며 관련 동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에 따라 운전면허 없이도 내차를 원하는 곳으로 몰고 갈 수 있는 시대가 점점 더 빨리 오고 있는 것은 현실이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한 나라일수록, 그리고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자율주행은 더 빨리 사회적인 시스템으로 정착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자율주행의 시대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업계는 지금의 인공지능 발전 속도라면 5년 이내에 상용화가 가능하고 10년 이내라며 거의 모든
공공기관 또는 관공서일수록 정확히 표현해야 간혹 일자리를 창출했다는 보도자료를 발송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있다. 내용을 들어보면 정말 민망해서 고개를 못들 정도의 아주 질이 나쁜 일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제목만 보면 마치 굉장한 일자리를 만든 것처럼 과포장된 보도자료다. 신년에는 수원시가 그런 보도자료를 제일먼저 냈다. 수원시 3일자 보도자료의 앞줄과 제목을 보면 수원시가 올해 ‘새-일 공공일자리사업’으로 34개 사업을 추진해 일자리 87개를 창출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실제 내용에 들어가 보면 전혀 취직이라고 볼 수 없는 그저 편의점 아르바이트 수준에 불과한 최장 8개월짜리 임시 일자리이다. 대학생들이 방학동안에 관에서 좀 편하게 시급 일만 원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한 것을 두고 일자리 창출이라고 보도자료를 낸 것이다,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이 얼핏 본다면 수원시가 정말 취직에 가까운 일자리 87개를 만든 것으로 오해하기 딱 좋다. 요즘 한국의 문제가 먹고 사는 것, 바로 경제가 가장 중요한 화두라고 하지만 이것을 미끼로 관에서 이런 식의 국민현혹성 보도자료를 내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일이다. 또한 3일자 경기도청의 보도자료도 사실을 왜곡한
2019년 신년 인사드립니다. 올 한해 더 많은 뉴스보다는 더 정확한 뉴스로 정보의 비가 오뉴월 장맛비보다 많이 쏟아져 정보라는 강물이 범람하는 시대가 작금의 시대입니다. 때로는 도움이 되는 정보도 있고, 때로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이 메모리만을 차지하는 정보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최악의 정보로는 가짜뉴스라는 것도 있습니다. 문제는 필요한 정보 보다 해악이 되는 정보들이 범람하면서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또한 정보가 너무 많아서 정보에 의지해 방향을 잡아야 활 시기에 오류들로 가득 찬 정보나 가짜뉴스로 인해 방향을 상실하거나 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이러한 때일수록 명료함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지만 그것조차도 쉽지 않은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너무 많은 미디어매체들이 뉴스를 전달하면서 걸러지지 않은 뉴스들이 가짜뉴스를 만들어내고 가공된 가짜뉴스는 다시 공격의 도구가 되어버리는 악순환 속에서 “어떻게 명료함을 유지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는 지혜로운 사람도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뉴스를 보는 즐거움 경인뷰(giview.co.kr)는 올 한해 더 많은 뉴스보다는 더 정확한 뉴스 그리고 의미 없는 기사의 나열보다는 의미 있는